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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선사시대> 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

by 다인ING 2022.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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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다인 이가 선사시대부터 차근차근 한반도의 역사를 알아보고 공유해 드리는 시간을 만들어 가볼까 합니다. 여러분께서도 유익한 시간을 보내시길 바랄게요.

인류가 한반도에 나타나면서 한국의 선사시대는 시작됩니다. 문자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입니다.
한반도의 선사시대는 유럽이나 지중해 지역과는 달리 크리스티안 위르겐센 톰센이 정리했던 고 구분하기 어려워서 고고학적 고생물학적 연구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역사 및 고고학의 시대구분에 의해 본다면 선사시대는 석기시대에 해당하며 석기시대는 발굴되는 유적의 특성에 따라서 세부적으로 구석기 시대 중석기시대 신석기 시대로 나뉘어 집이다.

구석기시대를 유물로써 살펴보면 초기에는 석장리유적이 있고 중기에는 검은 모루, 연천 전곡리유적 굴포리 유적 천지연 보위 그늘 유적 소로리 유적 단양수양개유적 등이 있습니다.

중석기시대는 빙하기가 끝난 1만여전에 기후가 따뜻해지기 시작하면서 자연환경이 바뀌게 됩니다. 구석기시대의 주요 사냥대상물인 쌍코뿔이, 물소, 매머드 등의 큰 짐승들이 사라지고 작은 짐승들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짐승들을 잡기 위한 무기인 활,화살촉, 등이 등장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플라이 스토세의 종말기에서 이후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관련 증거가 불충분하여 중석기 시대의 설정 여부가 여전히 학계에서 논란이 많다고 합니다.
중석기 시대의 유적으로는 통영 상노대도 조개더미 최하층이 있습니다.

빗살무늬토기시대 혹은 줄문토기시대 라고 불리는 한반도의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8200년부터 기원전 1500년에 이릅니다. 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토기로 전기에서 중기에 걸친 토기에 빗살과 같은 모양의 무늬를 넣어 만들었습니다. 이 토기를 따서 신석기 시대에 이름이 붙여졌고 주로 곡식의 씨나 먹다 남은 음식들을 저장하는 용도로 쓰였습니다. 토기가 만들어 지기 시작했던 시대의 한반도는 소규모의 수렵과 채집이 중심이었던 시대입니다. 토기의 겉면에 빗 같은 무늬새기개를 이용하여 만든 기하학적인 무늬를 배합하여 각종 무늬를 그린 토기입니다. 대체로 뼈연장 또는 나무 등으로 만 등 여러 가닥이 난 빗살 모양의 무늬새기개를 가지고 그릇 바깥 면에 짤막한 줄이 배게 누르거나 그어서 새긴 것을 빗살무늬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빗살무늬는 질그릇에 따라 여러 모습을 나타내는데, 한국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선·점선으로 된 짧은 줄을 한쪽으로 혹은 서로 방향을 엇바꾸어가면서 그려서 마치 생선 뼈처럼 생긴 모양입니다.
그릇 모양은 대표적으로 밑바닥 부분이 달걀처럼 생긴 것과 밑바닥이 납작한 모양으로 짚은 바리처럼 생긴 것이 있습니다. 그릇 종류에는 독 모양이 큰 것을 비롯하여 항아리·단지·대접·보시기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바탕흙에는 진흙에 모래만 섞은 것과 석면·활석 부스러기 같은 것을 섞은 것이 있으며, 그릇 색깔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갈색이 기본적으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섭씨 600~700℃의 열을 가하여 구운 것인데, 땅을 판 구덩이에서 장작불을 피워 구운 것으로 보이며 특별하게 만든다는 시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독과 같이 대형은 저장용, 중형은 취사용, 소형은 식기와 음식 준비 과정에 각각 사용되었다고 토기의 용도는 그 크기에 따라 각각 달랐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빗살무늬 그릇은 형태와 무늬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차이를 이고 있습니다. 이 토기를 따서 신석기 시대에 이름이 붙여졌고 주로 곡식의 씨나 먹다 남은 음식들을 저장하는 용도로 쓰였습니다.
빗살무늬 토기시대는 초기 전기 후기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주로 어로나 수렵하고, 움집에 반정 주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후반기에는 대규모 패총을 볼 수 있습니다.
중기에는 잡곡 등의 재배가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중심은 어로나 수렵에 있었다고 추측됩니다.
후기에는 내륙부의 거주가 증가하여 패총의 수가 줄어들고, 농업에 의존하는 생활이 진행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초기민무늬 토기시대처럼 소규모의 농경으로는 전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하는 후기 빗살무늬 토기 시대의 사람이 점차 남쪽으로 이주하여 농경으로 전환된 민무늬 토기의 사람들로 바뀌어 간 것입니다.

민무늬토기시대는 한반도의 청동기시대에 해당하는 기원전 3400년부터 기원전 300년경에 이릅니다. 이 시대에 발견된 전형적인 토기가 표면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 특징으로 인해 민무늬토기 문화, 민무늬토기시대 라고 불립니다.
민무늬토기시대는 빗살무늬 토기 시대에서 이어지는 시대입니다. 대규모 농경의 시작과 함께 동시에 사회에 계급이 생겨나고 원삼국 시대의 원시국가 형성으로 연결됩니다. 일본에서 당시 시대적으로 야요이 시대와 겹치며 이것이 영향을 주었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청동기시대로 불렸지만 출현한 것은 기원전 13세기이며 보편화된 것은 말기이기 때문에 청동기시대가 아닌 민무늬토기시대로 불리고 있습니다. 거대한 고인돌 석곽묘나 독무덤 같은 형태의 무덤이 출현했습니다.
민무늬 토기시대는 전기 후기 중기 말기로 나뉘어 집니다.
전기에는 농경 외에도 어로 수렵채집을 했습니다. 농경에는 아직 석기가 이용되었습니다. 큰 직사각형의 움집으로 된 취락이 생겨났습니다. 부뚜막이 여러 개 있는 주거 모습을 통해 여러 세대가 같이 살고 있었다고 추측됩니다. 후반에는 취락의 규모가 커졌으며 취락마다 유력자가 생겨났습니다. 점차 소형의 주거가 일반화되었고 부뚜막 대신 중앙에 난로 같은 노가 파였습니다. 고인돌과 부장품인 붉은 칠 토기, 돌칼 등 민무늬토기 시대를 통해서 종교 장제의 특징이 민무늬토기 시대부터 시작됩니다.
중기에는 대규모 농경이 시작되었고, 사회의 계급과 분쟁이 생겼습니다. 한반도 이남에서는 대규모 논도 만들어졌고, 수백 채 이상 되는 대규모 취락도 출현했습니다. 또 청동기가 출현하였고, 그 외에도 공예품 생산이 활발해져서 교역이나 지배 계층에 의한 분배도 이루어졌습니다. 후기에는 환호집락이나 고지대에서 발견되는 취락이 증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남해안 부분에 인구가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취락 수는 전 시대보다 줄어들고 있어, 소형가구가 생겨나는 현상이 진행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말기에는 철기가 출현하며, 주거에는 온돌용 아궁이가 나타납니다. 또 중기에 북방에서 전해진 비파형동검의 영향 하에 세형동검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한반도의 시작인 선사시대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어때요 유익하셨나요? 다음엔 더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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