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원 전후로부터 기원후 2세기 중반까지의 초기 철기 시대 이후를 원삼국 시대 또는 열국시대라고 말합니다. 역사적으로는 고조선이 멸망하고 부여가 건국되는 시기부터 삼국이 건립된 이후의 2세기에서 3세기에 걸친 시기에 해당합니다. 한반도에서 철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기원전 300년부터 기원후 300년까지 600년을 원삼국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급속한 철기문화의 보급으로 농경의 개선, 목축의 성행, 어업의 발달 등과 같은 산업의 전반적인 발달과 함께 여러 계통의 문화가 융합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다양한 시설을 구축한 부여, 삼한, 고구려, 옥저, 동예 등의 초기국가가 다수 등장하게 됩니다.
원삼국 시대의 국가들에는 부여, 고구려, 신라, 옥저, 동예, 삼한, 백제 등이 있습니다.
부여는 고리국의 동명왕이 건국한 예맥족 국가이며 영토는 지금의 창춘시 이퉁강 유역을 중심으로 광양과 남쪽으로는 랴오닝성, 북쪽으로는 헤이룽강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고조선이 기원전 108년에 멸망한 이후 여러 예맥 계열의 나라가 세워졌습니다. 동명왕이 세운 부여, 해모수가 세운 북부여, 해부루가 세운 동부여, 그리고 고주몽이 세운 고구려와 그 영향을 받은 백제가 예맥 계열의 나라입니다. 이들은 일찍부터 정착하여 농경 생활을 하였고 나라 역법을 사용하였으며 궁궐, 성책, 창고, 감옥 등 발전된 제도와 조직을 이루었었습니다. 신분 계급은 왕과 그 밑에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등 네 가지 가와 대사, 사자 등의 지배층, 그 밑에 하호라고 불리던 농노, 노예로 구성된 피지배 계급 이렇게 둘로 나뉘었습니다. 적의 침입이 있을 때는 4가가 출전하고 하호는 모두 군량을 부담하였는데 마치 국민개병제가 실시된 듯 집집이 무기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기원후 49년 부여는 중원에 있는 국가에 사신을 보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혼인동맹을 맺기도 하였습니다. 부여는 국력이 강하여 선대부터 한 번도 패하지 않았고 한 나라 이래로 동쪽의 숙신을 신하로서 복속시키고 있었습니다. 위의 고구려 정벌 때는 군량을 제공하였고 부여가 선비족의 침입으로 위태로울 때 진은 부여를 다시 부흥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의 세력이 북방 민족에게 쫓겨 남쪽으로 천도하면서 부여는 국제적인 고립상태에 빠졌습니다. 285년 고구려 서천왕 16년 선비족 모용외에게 공격받아 북옥저로 도망하였다가 후에 다시 본국을 회복하기는 하였으나 346년 연왕모용황에게 공격받아 쇠약해졌으며 이후 고구려의 보호를 받다가 494년 고구려에 병합되었습니다.
신라는 기원전 57년부터 935년까지 고구려, 백제와 함께 고대 한반도의 삼국 시대를 이끌고 발해와 함께 남북국 시대를 구성하였던 국가로 세계적으로 오래 계승된 왕조 중 하나로 꼽힙니다. 진한에 소속된 부족국가 중 하나인 경주지역의 사로국이 그 시초이며 혁거세 거서간이 나라를 세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서기 503년 지증왕 때에 왕호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국호를 '왕의 덕업이 날로 새로워져서 사방을 망라한다'라는 의미의 신라로 정하였습니다. 신라는 삼국 중 가장 먼저 세워졌지만 전성기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6세기경 법흥왕 때 불교를 받아들여 왕권 강화와 백성의 단결을 도모하였으며 금관가야를 병합하였습니다. 진흥왕 대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하고 6세기 중엽 한강 유역을 획득하여 당항성을 확보하였으며 화랑의 활약으로 대가야를 정복하였습니다. 7세기경 김춘추의 외교적 노력으로 당과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정복하였습니다. 이후 나당전쟁에서 최종승리하여 대동강 이남으로부터 원산만에 이르는 옛 고구려, 백제 지역을 확보하고 이로써 신라는 삼국통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였으며 이후 진국이 건국되면서 진국(발해)과 함께 통일신라시대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10세기에 이르러 중앙귀족이 분열하고 지방에서 자리 잡고 있던 호족의 세력이 향상하여 900년 견훤이 후백제를 901년 궁예가 태봉을 세우면서 후삼국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후삼국시대가 발발하여 국력이 약해진 신라는 백성을 단합하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경순왕 때인 935년에 고려에 귀순하기로 하면서 56대 992년 동안 이어진 신라의 종묘와 사직을 닫게 되었습니다.
고구려는 한국의 고대 왕조 중 하나입니다. 본래의 국호는 고구려였으나 당시의 금석문과 역사 기록을 토대로 장수왕 대에 고려로 개칭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후에 궁예가 세운 고려와 왕건이 세운 고려가 계승하여 고려라는 국호는 천 년 이상 지속되었습니다. 현재 한국의 영문 국호인 코리아 역시 고려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고구려는 오늘날 평안도, 랴오닝성, 지린성을 주 무대로 삼으며 한반도 중부와 남부, 헤이룽장성 및 연해주, 몽골 동부까지 지배하였습니다. 5세기에 이르러 고구려는 내부로는 말갈, 거란, 실위 등을 휘하에 두고 모용수의 후연과 요동군을 놓고 대립하여 이후 요동군 정벌과 북연을 속방으로 만들며 역량을 강화했습니다. 제도적으로는 도교, 불교, 태학, 율령 등의 제도를 도입해 체계적인 제도를 갖추어 국가를 운영했습니다. 고구려 시대는 한민족 전통문화의 뿌리로 각저총의 '씨름도'에 근거해 전통 스포츠 씨름의 기원이 된 시대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또한 난방방식인 온돌, 현악기인 거문고의 기원으로도 여겨지며 한민족의 전통 설화 토생원전, 바보온달전,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등의 배경이기도 합니다.
옥저는 함경남도 영흥 이북에서 두만강 유역 일대에 걸쳐 있었던 종족과 읍락집단을 말합니다. 토지가 비옥하여 오곡을 생산하였고 어물과 소금 등의 해산물이 풍부하여 고구려에 소금, 어물 등을 공납으로 바쳤습니다. 옥저는 고구려와 같이 부여족의 한 갈래였으나 풍속이 달랐습니다. 신랑과 신부가 어린 나이에 약혼하고, 신부가 신랑 집에서 살다가 어른이 되면 예물을 주고 신부를 데려오는 민며느리제가 있었고 가족이 죽으면 시체를 풀이나 흙으로 가매장한 후 나중에 그 뼈를 추려서 가족 공동 묘인 커다란 목곽에 안치하는 세골장도 있었습니다. 그 입구에는 쌀을 담은 항아리를 매달아 죽은 자의 양식으로 하였다고 합니다. 고구려 후방 기지의 역할을 한 옥저는 조위의 고구려 정벌의 여파로 동천왕 때 침략받았습니다.
동예는 한반도 동해안 일대에 동옥저와 자리 잡았던 초기 부족국가의 하나입니다. 예라고 불렸으나 넓은 의미의 예와 구별하기 위해 통상 동예라고 부릅니다. 강원도 북부의 동해안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함경남도 원산으로부터 남쪽으로는 강원도 강릉과 경상북도 일부 지역에 이르렀고 영서 지역 산간까지 세력범위를 넓혔는데 서쪽의 마한, 백제와 군사적으로 대립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농사를 주업으로 하였고 직조기술도 발달하였습니다. 산과 하천을 경계로 읍락이 구분되어 각 읍락을 삼로가 통치했습니다. 6세기에 신라의 진흥왕에게 완전히 복속되어 신라의 하슬라주로 편입되었습니다.
삼한은 삼국시대 이전 한반도에 자리 잡고 있던 마한, 진한, 변한을 통칭하는 말로 청동기시대에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 성립하였던 진국에 기원을 둔 것입니다. 이후 마한의 백제국이 백제로, 진한의 사로국이 신라로, 변한의 구야국이 가야가 되었다는 설이 가장 일반적입니다. 삼한으로 통칭하는 78개의 나라의 성격을 두고는 여러 가지 논의가 진행되어왔는데 대개 신지를 정점으로 읍차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로 서열화되어 있는 상당한 정치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한편 삼국시대 이후 후기부터 삼한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을 의미하는 단어로 치환되어 이해 되는 경향이 생겨났으며 후대로도 계속 이어져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백제는 한국의 고대 국가 중 하나로 고구려, 신라와 함께 삼국시대를 구성하였습니다. 시조는 부여, 고구려에서 피난한 온조왕으로 전해지며 마한 54개 연맹체 중 하나인 십제국으로 시작해 6세기경 마한을 병합했습니다. 십제국은 1세기에서 3세기에 걸쳐서 한반도 남부의 소국들 및 한사군과 대립하면서 성장한 것으로 추측되며 4세기부터 전라도 지역으로 세력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4세기 중엽에는 전라도 부족국가 일부를 멸망시키고 고구려와 대립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5세기 초부터 고구려의 공격을 받아 수난이 계속되었고 475년에서 한강 유역을 상실하고 웅진으로 수도를 옮겼습니다. 국력이 계속 약화하면서 영토가 수축했고 660년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공격을 받고 수도 사비성이 함락되며 멸망했습니다. 그 후 부흥 운동이 일어나 왜국의 인질이었던 풍을 임시 왕으로 추대하며 투쟁을 이어 갔지만 서로를 믿지 못하고 내부 분열이 발생하여 3년 만에 전멸하였습니다.
오늘은 원삼국 시대의 나라들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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