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선 후기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사림파의 지지를 받고 즉위하게 된 인조는 명나라와의 친선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것을 견제하던 청나라(후금)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합니다. 이 전쟁에서 패한 조선은 인조가 청의 황제에게 무릎을 꿇고 호령에 따라 양손을 땅에 댄 다음 이마가 땅에 닿을 듯 머리를 조아리는 행동을 3회하고 일어나는 '삼배구고두례'를 행하게 하고 소현세자를 비롯한 훗날의 효종과 왕자들 그리고 백성들을 볼모로 끌려가게 하였습니다.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와 조선 간의 군신 관계가 확립되었습니다. 임진왜란부터 이어져 온 여러 차례 전란들로 인해 국토는 황폐해지고 국가 재정은 고갈되었습니다. 백성들은 비참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고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병자호란이 종전되고 청나라와 군신 관계가 된 조선은 겉으로는 청나라와 사대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실제로는 은밀히 국방을 강화하면서 청나라에 대한 복수로 북벌을 준비했습니다. 효종은 군대를 양성하고 성곽을 수리하는 등 북벌을 준비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군사력은 확립되었으나 효종의 서거로 일단락되었습니다. 이후 북벌론은 병자호란 때에 패전에 책임이 있던 서인들이 책임을 회피하고 남인들의 정계 진출을 견제하고 자신들의 집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하였습니다. 북벌론은 민심을 수습하고 국방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였지만 외부 세계와의 고립을 초래하여 조선 사회의 낙후를 가속하였습니다. 당시 청나라는 중국을 장악한 뒤 국력이 크게 신장하였고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 문화 국가로서의 발전해 나갔습니다. 이에 따라 조선에서도 청나라를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이로운 것은 적극적으로 수용하자는 북학론이 대두하였습니다.
조선 후기의 정치는 붕당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인조반정 때 정권을 잡은 서인들은 남인으로 인해 지속적인 위기를 겪었습니다. 남인은 서인 정권이 추구했던 개혁의 부당성과 북벌 운동을 지적하면서 효종과 인선왕후에 대한 계모 자의대비의 복상 기간을 둘러싼 예절에 관한 논쟁인 '예송논쟁'을 일으켜 서인들과 대립하였습니다. 그러나 숙종 때 발생한 경신환국에 따라 남인이 실각하고 서인이 다시 정권을 잡았습니다. 서인은 남인과의 화해를 주장하는 소론과 완전히 남인을 축출하자는 노론으로 나뉘어 두 세력의 대립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상대 세력의 존재 자체를 아예 인정하지 않는 일당 전제화 현상까지 일어나게 됩니다. 숙종은 상황에 따라 한 당파를 완전히 내몰고 상대 당파에 정권을 모두 일임하는 편당적인 인사를 하는 환국을 일으켜 붕당을 자주 교체하였습니다. 17세기 후반 이후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면서 정치적 동향이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세력 다툼은 상업적 이익을 독점하려는 경향과 군사력과 경제력확보에 필수적인 군영을 장악하는 것으로 옮겨졌습니다.
영조가 즉위할 당시 노론과 소론의 집권 다툼은 극한으로 치닫고 있었고 영조는 당쟁을 타파하기 위해 노론과 소론의 온건파를 기용하면서 통치 이념으로 탕평론을 채택하였습니다. 노론을 한 사람 등용하면 상대 자리에는 소론을 등용하는 '쌍거호대'의 방법을 실시하는 것으로 탕평책을 시행하였습니다. 영조의 손자였던 정조는 탕평 정치를 더욱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싸고 시파와 벽파 간을 갈등을 경험한 정조는 탕평에 더욱 힘썼습니다. 당시 붕당 조성의 주요 통로였던 인사권에 임금이 직접 개입하면서 조정에서 당파의 영향력을 줄이고 임금과 정승들이 조정의 주도권을 확보하도록 하였습니다. 연좌법과 대역죄 적용 범위를 제한함으로써 대역죄를 명분으로 삼고 다수의 상대 당 인물들을 일시에 탄핵하는 관행을 철폐하였습니다. 왕실 학문 연구 기관이자 왕실 도서관이었던 규장각을 통해 붕당의 비대화를 막고 임금의 권력과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치 기구로 육성하였습니다.
정조가 서거하고 순조가 즉위하였는데 어린 순조를 대신하여 그의 장인인 김조순이 정권을 장악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안동 김씨 집안의 세도정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로도 순조, 헌종, 철종 3대에 걸쳐서 안동 김씨와 풍양 조 씨 등 외척 세력의 세도정치가 60여년에 걸쳐 지속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이어진 세도정치의 영향으로 왕권은 쇠약해졌습니다. 세도정치는 많은 부정부패를 초래하였는데 전정, 군정, 환곡 등 삼정 문란이 그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세도정치는 사회적 혼란을 일으켰고 이에 대항하는 민란이 여러 차례 발생하였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민란은 순조 때의 홍경래의 난, 철종 때의 진주민란 등이 있습니다. 몰락한 양반이었던 홍경래의 지휘 아래 많은 몰락한 농민과 영세농이 민란에 참가했습니다. 관군에게 진압되었으나 이후에도 민란은 전국적으로 계속 발생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세도 정권의 횡포는 사그라지지 않았고 날로 심해져 갔습니다. 19세기에는 그 횡포가 극에 달해 백성들은 비참한 생활을 해야 했고 이듬해 전국적인 수해와 괴질이라는 현재의 콜레라가 발병하여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오늘은 조선 후기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 시간에도 이어 조선 후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유익한 시간을 보내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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